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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3 11:27 수정 : 2013.08.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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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 방승환 삼우종합건축사무소 도시설계가

6년 전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전주 남부시장을 갔었다. 밤에 가서 그랬는지 조금 을씨년스럽던 기억이 있던 그곳을 올 전주, 담양 일대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며칠 전 TV를 통해 본 ‘청년몰’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IMF가 참 많은 것을 바꿔놨다고 생각한다. 그 중 일과 직장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꿔놓았다. 더 이상 회사가 자신의 삶을 은퇴까지 책임져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시야가 넓어졌다. 정시출근과 제멋대로인 퇴근 시간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일과 직업에 대한 가치판단에서 우선 순위가 다양해진 것이다. 청년몰은 일차적으로 이런 배경하에 2~3차적으로 전통시장 활성화, 지방 중소도시의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더해져 나온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보고 싶었다.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 7대 시장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전주 외곽 지역으로 도심기능이 이전되면서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이 시기 전통시장의 쇠퇴는 전주시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2000년 초반 전국 전통시장에 현대화 공사가 벌어졌다. 2011년까지 10년간 1.5조 원의 지원이 이루어졌다.('전통시장 육성사업 평가보고서', 국회예산처, 2012) 주로 간판정비, 주차장 확보, 화장실 신설 등과 같은 하드웨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이런 하드웨어만의 변화로 되살아난 전통시장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쩌면 하드웨어의 개선만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전통시장은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잠재력만큼은 손상되지 않은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전통시장은 도심구조의 변화와 같이 쇠퇴할 수밖에 없는 큰 흐름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드웨어의 개선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하드웨어의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상황을 인식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년부터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일명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목적은 '침체된 전통시장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어 시장을 문화체험 공간이자 일상의 관광지로 활성화하기 위함'이었다.

전주 남부시장은 2011년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되었고 '청년장사꾼 만들기' 사업으로 구체화하였다. 공간적으로는 '청년몰'을 남부시장 2층에 만들었다. '청년몰 만들기'는 프로그램 교육 위주의 단발적 효과보다는 청년장사꾼을 통해 전통시장의 자발적인 변화를 도모하려는 사업으로, 내용적으로 주도한 주체는 사회적 기업 '이음'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주시가 행정적으로 지원한 내용은 남부시장 330여㎡의 옥상과 각 점포 당 창업지원금 1000만 원씩이었다. 그리고 점포의 1년간 임대료를 면제해주고 소정의 리모델링 비용도 지원했다고 한다.('마트처럼, 홍대처럼' 전통시장의 변신, 연합뉴스, 2012.07.08) 청년몰 만들기의 결실은 2012년 5월 4일, 청년 사장 17명이 12개 가게를 꾸려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김병수 이음 대표는 '자본이 부족한 20대가 일상적 생활공간 안에서 자기 공간을 확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청년장사꾼이란 개념이 반복적이고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계약제도에 도전하는 실험이지만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부시장의 오랜 역사와 청년장사꾼들의 변화가 남부시장 청년몰을 통해서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덧붙였다." - '카페야? 시장이야? 전주 남부시장의 무한변신', 아시아경제, 2012.07.08

사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문전성시 프로젝트'든 '청년몰 만들기'든 모두 시스템이다. 이는 2002년부터 있어왔던 '전통시장 현대화 공사'와 같은 범주다. 그렇기 때문에 두 시스템 모두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과 시스템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결과도 크게 달라질 수 없다. 내가 이곳을 직접 보고 싶었던 이유도 시스템이 어떻게 적용돼 어떤 공간을 만들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활용하고자 한 주체 그리고 그 주체가 만들어낸 공간을 직접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주천 변에 조성된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주 천동로로 난 입구로 들어서면 청년몰로 쉽게 갈 수 있다. 청년몰이 있는 시장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걸린 간판에는 '레알뉴타운'이라는 빨간색 글씨와 함께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이 슬로건 만으로도 내가 직접 확인하고자 했던 주체의 기본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다(위 사진). 청년몰에 가게를 연 사장님(?)들의 평균 나이는 이름 그대로 20~30대 청년들이다. 내가 흔히 '종족이 바뀌었다'고 표현하는 1980년대生, 학번으로 따지면 2000년대 학번 전후의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는 고등학교 졸업 때 쯤 IMF를 겪은 IMF세대다. 앞서 언급했듯이 IMF세대에게 일과 직업이 가지는 의미에서 '안정적'이라는 단어는 많이 퇴색됐다. 그래서 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선택할 수 없었던 '안정적'이라는 의미 대신 그들이 선택한 의미는 '만족'이었다. 슬로건에서도 읽을 수 있는 의미는 적당히 벌고도 느낄 수 있는 만족을 이곳에서 찾자는 것이다. 물론 '적당히'의 기준도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한 언론 기사를 보면 청년몰은 생긴지 반년 만에 40%, 기존 남부시장에 식당들은 20%가량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좋은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의 유동인구도 주말에는 약 1,500명 정도가 됐다고 한다. ('선지순대 먹고 칵테일로 입가심... 역발상으로 대박', 중앙Sunday News, 2012.12.30) 그러면서 청년몰의 성공비결로 아래와 같이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생활의 발견: 한옥마을 관광객을 시장에 끌어들인다. 둘째, 발상의 전환: 전통시장에 '홍대 스타일' 상가를 만든다. 셋째, 베짱이 경영: 반나절이라도 손님과 즐겁게 소통한다. 넷째, 공간의 개방: 외부음식 반입 막지 않고 테이블을 공유한다. 다섯째, 나눔의 미학: 내가 아는 지식을 틈틈이 주민과 나눈다." -'선지순대 먹고 칵테일로 입가심... 역발상으로 대박', 중앙Sunday News, 2012.12.30

"물론 사람이 백이면 빛도 백 가지라고, 남부시장의 모든 상인에게서 응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왔다가 금세 나가버릴까 의심하거나, 분위기만 들뜨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경계나 근심에도 불구하고 이 사교성 좋고 감성이 풍부한 청년장사꾼들은 스스로 남부시장인이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러 청년몰을 홍보해주시기도 하고, 기웃기웃 오셔서 밥 한 그릇, 차 한 잔 사주시는 어르신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어떻게 하면 남부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 시민들에게는 어떻게 양질의 문화를 되돌려드릴 수 있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그러한 취지로 그들은 매주 수요일 저녁 '반상회'란 이름 아래 머리를 맞댄다." -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한겨레21, 2012.06.04

현재(2013년 4월 기준) 청년몰을 방문하면 조금 어수선하다. 몇몇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ㅁ자로 형성된 열린공간(위 사진) 주변의 상점과 그 뒤편, 한창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각 상점들이 파는 물건들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청년몰이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인사동의 쌈지길(최문규&Ga.A건축, 2004)에서도 들었던 생각인데, 이런 공간이 정말 사람들로 가득 차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 굳이 방금 커피를 마셨음에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아내의 의견에도 뭔가를 마시고 주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곳이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재생지에 씨앗을 심은 엽서를 사겠다는 아내의 요구에도 선뜻 응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10㎡ 남짓한 가게에 앉아 있는 젊음들은 내가 대놓고 추구하지 못하는 가치를 대놓고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웠다. 내게 그들 한명 한명은 작은 기업(Micro-Entrepreneur)처럼 보였다.

청년몰은 과거 몇 년간 내가 고민했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줬다. 관 주도의 와드드한 개발의 한계, 지역 활성화 방안에 대한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접근, 보고서상에서만 수없이 등장한 '예술, 문화' 운운하는 컨텐츠의 한계, 결국 상업시설이 지역의 재방문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드러낼 수 없어 왔던 속내, 공공이 만들어낸 매력적이지 못한 청년 일자리, 풀뿌리 민주주의 같은 풀뿌리 지역 활성화 방안 등등의 실마리를 나는 청년몰에서 볼 수 있었다. 청년몰이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

사진제공 - 방승환 도시설계 전문 블로그 (http://archur.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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