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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25 14:24 수정 : 2013.10.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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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야 산다. 씨앗은 썩어야 싹이 나고 동물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야 자연이 산다. 사람도 수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이 남긴 흔적은 좀처럼 썩지 않고 남는다. 무심코 집어든 비닐 봉투는 백 년을 가고 아침에 마시고 버린 커피 병은 수십 세기를 가뿐히 버틴다. 사람들은 안 썩어 골치인 쓰레기를 전국 곳곳에 묻고 태우고 바다에 내다 버렸다.

이제는 ‘내다 버리기’에도 한계가 왔다. 쓰레기 매립장은 최악의 혐오시설이라 유치도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잘 썩으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썩는 소재 폴리젖산(PLA)에 주목했다.

1932년 개발된 폴리젖산은 석유를 원료로 만드는 포장용기, 의류와 같은 제품들을 만들 때 석유를 대체해 사용할 수 있는 신소재다. 폴리젖산은 옥수수, 사탕무, 밀, 감자에 포함된 당질로 만든다. 흙에 묻으면 수분과 이산화탄소에 의해 분해되어 썩는 플라스틱, 썩는 의류를 만들 수 있다.

기존에 제조 원가가 높아 의료용 봉합사나 일부 생활 플라스틱 용품에 쓰였으나 최근 기술 발전으로 생산비용이 낮아져 그 쓰임새가 다양해졌다. 국내의 사회적기업 중에서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과 ‘더뉴히어로즈’가 그 잠재력에 주목해 폴리젖산 섬유(이하 옥수수 섬유)로 의류를 만들었다.

① 대지를 위한 바느질 ② '더뉴히어로즈'의 콘삭스

'대지를 위한 바느질(ecodress.net)'은 옥수수 섬유로 웨딩드레스를 만든다. 결혼식이 끝나면 일상복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리폼 해준다. 유아용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친환경 의류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친환경 혼인 문화 확산의 공을 인정받아 2012년 서울시로부터 환경보전분야 우수상을 받았다.

'더뉴히어로즈(cornsox.co.kr)'는 옥수수 섬유로 양말(콘삭스)을 만든다. 국내 ‘휴비스’사의 옥수수 원사 인지오(Ingeo)에 10~20%의 스판 소재를 섞어 만든다. 한 켤레에 5,200원으로 지오다노, 유니클로와 같은 대형 의류 유통 체인 평균 가격 3,500원에 비해 50%가량 비싸다. 그러나 혼방률이 비교적 낮고 땅에 묻으면 1년 내로 자연분해되어 친환경적이다. ‘더뉴히어로즈'는 양말 한 켤레를 판매할 때마다 옥수수 4kg을 생산할 수 있는 종자를 아프리카 브루키나 파소에 기부한다.

옥수수 섬유로 만든 의류는 자연분해되는 장점 외에도 통기성, 보온성, 투습성이 좋아 화학섬유보다 착용감이 좋다.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당질은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고 환경호르몬 배출이 없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석유화학 섬유의 절반이다. 일반 섬유에 비해 부족했던 내구성도 꾸준한 연구 개발로 극복했다.

그 밖에도 국립수산과학원의 박성욱 연구원은 폴리젖산 소재를 활용한 잘썩는 어망 개발로 유령어업(버려진 어망이 물고기를 폐사시켜 해양 생태계를 파괴) 문제를 해결했다. 영남대 패션산업학부 4학년 ‘에코 파이버 리더’팀 역시 폴리젖산으로 잘썩는 담배필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 친환경 섬유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일부 반론도 있다. 폴리젖산이 석유화학에 비해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적지만 식물 재배와 가공이 토양 산성화와 수질오염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또 지금의 산업 수요를 폴리젖산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면적의 옥수수밭이 필요해 산림자원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차원에서 정확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잘 썩는 소재의 가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사회,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기업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아이디어 공급원이 되고 있다. 도전적인 사회적기업가와 윤리적 소비자가 만드는 잘 썩어 행복한 소비시장, 소비문화가 사회적경제를 통해 구체화되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승균 <사회적경제> 리포터 theolive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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