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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9 09:47 수정 : 2013.12.1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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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회적 경제] 이봉현의 소통과 불통

요즘 상영중인 영화 <어바웃 타임>에는 남녀가 불이 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식당에서 처음 만나 얼굴도 모른 채 목소리와 체취만으로 서로에게 끌리는 장면이 나온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를 지나 형광등이 대낮처럼 밝은 집에 들어서는 우리는 어둠을 모르고 산다. 하지만 어둠을 알아야 밝음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어둠을 체험해 봄으로써 어둠의 소리를 듣고, 시각장애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회가 있다. 바로 ‘어둠 속의 대화’이다. 이 전시회는 1988년 한 독일인이 후천적으로 실명한 친구의 사회적응을 돕다가 ‘보이지 않는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 지금까지 세계 25개국 150개 도시에서 열려 600만명 이상이 체험했고, 6000명 이상의 시각장애인이 이 전시를 위해 고용되는 효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는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엔에이치엔(NHN)이 설립한 사회적기업 ‘엔에이치엔 소셜엔터프라이즈’가 서울 신촌에 상설 전시관을 마련해 놓고 어둠의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휴대전화, 야광시계 등 조금이라도 불빛을 내는 물품을 꺼내놓은 체험자들은 시각장애인의 인도를 받아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눈을 감은 것과 마찬가지인 칠흑 같은 어둠은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은 벽을 짚으며 앞으로 조심조심 나아가지만, 앞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기에 공포가 밀려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각을 제외한 몸의 다른 감각들이 조금씩 깨어나는 걸 느끼고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렴풋하게 다가온다.

소리와 냄새, 손에 닿는 촉감으로 이곳이 나무가 무성한 공원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값을 흥정하는 시장인지, 배를 타는 선착장인지 알게 된다. 한 줄기 빛도 없는 속에서 90분 동안 이렇게 움직이는 동안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데 안심하고 감사하게 된다.

우리는 원치 않아도 하루에 수천개의 광고를 보고 듣는다. 지하철을 타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내가 쉴 틈 없이 나와 잠깐의 상념을 흩뜨려 버린다. 게다가 하나씩 손에 든 모바일 컴퓨터 덕분에 우리의 눈과 귀, 두뇌는 더 바빠졌다. 하지만 정보가 넘치고 연결이 조밀해진 세상에서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놓치고 개인의 심리적 고립은 깊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을 감고 마음을 여세요”(Close your eyes, open your heart), “보이는 것을 넘어서 내면을 응시해 보세요”(Switch off the sight, switch on the insight). ‘어둠 속의 대화’ 전시회장에 쓰여 있는 글귀처럼 ‘침묵의 소리’를 듣고 ‘어둠의 파노라마’를 볼 줄 아는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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