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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2 11:46 수정 : 2013.07.0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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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의 경제 -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사람들


탐욕의 ‘야수 금융’이 위기 불러
사회적금융으로 상생 모색해야

지방에서 대도시로 올라온 학생들은 주거비 부담이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도시 이곳저곳을 살펴보면 낡아서 세를 주기 어려운 집이나 공공기관의 남는 공간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곳을 주거공간으로 재단장해 지방 출신 학생 3~4명에게 보증금 없이 대학가 방값의 반값에 제공하는 사업이 있다.

청년들이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만든 기업 ‘프로젝트옥’(대표 김정헌)은 낡은 집을 고쳐 임대하는 ‘우주’(woozoo)라는 사업을 하는데, 낡은 집을 고치려는 주인이나 입주 대학생 모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우주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벤처투자 펀드의 지원으로 마련한다. 벤처투자라고 하면 흔히 ‘대박’ 꿈을 연상하지만, 이렇게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사업적으로도 지속성이 있는 곳에 투자하는 벤처도 있다.

우리는 지난 몇십년 동안 금융이 가진 ‘야수’의 얼굴을 주로 봐왔다. 고삐 풀린 금융이 사상 최악의 사고를 저지른 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기업이 쓰러졌고,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집을 빼앗긴 이웃도 수백만 가구다. 실업과 경기침체의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시절 실물경제보다 훨씬 웃자랐던 과잉금융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금융을 무시하고 살아갈 이유는 없다. 금융이 쓴 이기와 탐욕의 허울을 벗기고 사람다운 얼굴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다.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적 금융은 공동체와 사회에 봉사하는 ‘착한’ 얼굴을 가진 금융이다.

사회적 금융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돈을 투자하거나 융자해줘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활동을 말한다. 지역사회나 국가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을 모집하고, 효과적인 금융서비스를 개발하며, 상부상조하는 금융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사회적 금융의 여러 모습이다.

유럽과 북미에서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회적 금융 기법이 발달해왔다. 우리나라도 최근 호혜와 협력의 정신으로 운영되는 사회적 경제의 영역이 커가면서 그 필요성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같은 사회적 경제 영역에 금융이 접목되면 가뭄 든 논밭에 물이 들어가듯 사업이 생기를 띠게 된다.

문제는 이런 곳에 투입할 자본이 아직은 많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자본을 만드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가 올 2월 말 확정한 1000억원 규모의 사회투자기금이 그런 것인데, 서울시가 500억원을 내고 나머지는 민간의 기부금으로 채운다. 민간영역에서도 소셜벤처 펀드 등 비슷한 기금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회적 금융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좋은 뜻으로 기부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도움을 받은 사업이나 기업이 자립을 해서 지원받은 돈을 갚도록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다른 사업들도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과와 금융지원을 연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영국 피터버러의 퇴소자 재범률 낮추기 같은 사업은 실제 범죄율이 낮아지는 성과와 연계해 수익률이 결정되는 채권을 발행한다. 민간 금융자본이 참여할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저소득층에게 소액을 빌려주는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경우에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같은 곳은 돈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연대 책임을 지워 꼭 자립해서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한다. 서울 중구에서 성공회가 운영하는 정동국밥도 이런 사례다. 기부금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점심을 대접하다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셜펀딩을 받아 직접 국밥집을 차렸는데, 일반 손님도 많이 찾아와 몇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고민은 늘어나는 복지 욕구를 충족할 만큼 재정이 넉넉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금융을 활용하면 재정에 부담을 덜 주고 지속성 있게 복지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제도 많다. 상호부조가 목적인 신용협동조합이 정작 협동조합 같은 법인에는 대출을 할 수 없도록 한 규제처럼 걸림돌이 많다.

한국에서 사회적 금융은 봄날의 새순을 틔운 나무와 같다. 여러 난관을 이기고 성하의 우거진 숲으로 자라길 기대해 본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사회적 금융은 비교적 새로운 분야이고, 변화도 빠르기 때문에 무엇이 사회적 금융이며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다소 불확실하다.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원장 문진수)에 따르면 사회적 금융은 크게 다음의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ㅁ지역개발금융(CDFI) : 낙후된 곳에 돈이 흐르게 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기능.

ㅁ사회목적투자 : 기부나 자선을 넘어 사회 및 환경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투자기반을 마련하는 투자.

ㅁ마이크로파이낸스 : 소액대출과 지원서비스를 결합해서 빈곤층의 자활·자립을 돕는 활동.

ㅁ풀뿌리 관계금융 : 자조·자립형 사회적 경제 클러스터 조성에 중추 기능을 담당하는 조합형이나 온라인 풀뿌리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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