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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5 11:03 수정 : 2013.11.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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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공동육아와 혁신학교 교육을 하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내곡동에 이주한 젊은 주민들이 차린 마을 카페와 동네도서관에서 엄마들이 공예품을 만드는 사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있다. 고양/박경만 기자

[호남 쏙] ‘도시 속 농촌’ 고양 대내리 마을공동체

처음 시작은 ‘내 아이를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공동육아였다. 10~20년 전 경기도 고양지역에서 공동육아에서 틔운 싹이 마을공동체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있다. 공동육아를 해온 부모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작은도서관과 마을 카페 등을 만들어 소통하고 공부하는 마을공동체를 가꿔가고 있다.

인구 100만에 가까운 수도권 대도시의 변두리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곤충과 우렁이를 잡고 알 품은 거미를 관찰하며 뒷산과 들판·개천을 누비고, 부모와 함께 논에 모를 심고 텃밭을 일군다. 몇 해 전만 해도 도시 아파트숲 속에서 콘크리트를 밟으며 자랐던 아이들이다.

야트막한 산과 들이 펼쳐져 있는 도시 속 농촌마을인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내곡동의 자그마한 마을 카페와 도서관에선 21일 오후 열기가 넘쳤다. 엄마들은 원탁에 모여 도란도란 얘기하며 공예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아이들은 옆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 도서관에선 초등학생들에게 한자교실, 영어교실이 열리고 있었다.

대장동·내곡동을 묶어 ‘대내리’로 불리는 마을은 전철 3호선 대곡역과 경의선 곡산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지만, 40여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나이 많은 주민들이 주로 거주해왔다. 조용한 마을이 떠들썩해진 것은 마을 안 대곡초등학교가 경기도 혁신학교로 지정된 2010년부터다. 공동육아 협동조합 ‘나무를 키우는 햇살’(나무햇살) 어린이집이 먼저 터전을 잡고 있었다. 아파트숲이 아닌 생태적 환경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은 젊은 부모들이 대안교육의 희망을 안고 몰려들었다. 대내리 주민은 6년 전 883가구 2107명에서 올해 1029가구 2413명으로 늘었다.

어린이집·초등학교 학부모 50여가구가 마을 뒷산 이름을 따 영주산마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지난 4월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출자해 165㎡ 크기 마을 카페 ‘영주산 다락방’과 ‘두근두근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카페와 도서관은 마을공동체의 소통과 만남, 학습이 이뤄지는 중심으로 떠올랐다.

즐거움이 많다는 다락(多樂)방 카페 벽면 11월 일정표에는 서예교실, 바느질 모임, 반찬 만들기, 복싱 다이어트, 인라인스케이트 등 하루 2~3건이 빼곡했다. 순번을 정해 한나절씩 봉사하는 카페지기 명단도 눈에 띄었다. 카페에선 고양시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인 ‘마을 평화학교’ 강좌가 주마다 열려 주민 20여명이 갈등 해결 대화법을 배운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책도 읽고, 배고프면 라면도 끓여먹을 수 있어 좋아요. 모두들 한 가족처럼 대해주시죠.” 대곡초 6학년생 박윤정(12)양이 자랑했다.

카페 운영위원장인 정미희(45)씨는 “구성원들 사이에 다른 점도 많지만, 경쟁이나 입시 위주로 달려가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울 수 있도록 협력하려는 마음은 모두 같다. 롤모델을 미리 정하지 않고 함께 맞춰가며 만들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내곡동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꾸린 영주산마을협동조합이 지난 3일 마을 안 대곡초등학교에서 연 마을 축제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왼쪽) 엄마들이 파전을 부치고 있다. 영주산마을협동조합 제공

10년전 젊은 세대 가족들 이주
공동육아 어린이집 지은 뒤엔
폐교 위기 초등교를 혁신학교로
인구 늘자 카페·도서관도 열어

끼리끼리 공동체를 넘어
원주민과 함께하는 한마당 축제
“낯선 이 몰려드니 경계심 있었죠
그래도 마을활기 도니 좋네요”

젊은층의 잇따른 이주와 마을공동체 가꾸기에 원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방기석(54) 대장동 통장은 “젊은 사람들이 이주해오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니 마을에 활기가 돌아 좋다”고 말했다. 내곡동 토박이라는 김아무개(70)씨는 “젊은 세입자들은 우리(원주민)와 참 다르다”고 말했다.

영주산마을협동조합은 지난해에 이어 이달 초에도 원주민들을 초청해 운동회, 공연, 마을 알기 전시회 등으로 ‘대내리 한마당’ 축제를 열었다. 22일 마을회관의 김장 담그기에도 동참했다. 내년엔 축제 준비 단계부터 원주민들과 협의할 참이다.

대내리 마을공동체는 10여년 전부터 공동육아를 하러 마을에 둥지를 튼 12가족에서 비롯됐다. 2006년 나무햇살 어린이집을 세우고는 마을공동체 틀을 잡아갔다. 주마다 모여 공동육아와 대안교육을 고민하며 공부하고, 유기농 텃밭 가꾸기나 쓰레기 활용 같은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기’를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나무햇살 협동조합 초대 이사장 한동욱(44)씨는 “진보적 삶을 고민하던 386세대 회사원과 전문직 등 초창기 조합원들은 공동육아를 하려면 모든 구성원이 운영과 재정, 학습을 함께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어린이집 이후 자녀들이 진학할 폐교 위기의 대곡초등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원주민 학부모들로부터는 관심을 받지 못하던 대곡초의 운영에 적극 참여했다. 텃밭가꾸기·생태환경 등 체험프로그램 제공, 학부모회·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등으로 가장 앞선 공교육 학교가 되는 데 힘을 보탰다. 한때 전교생 84명이던 도시 속 작은 학교는 혁신학교 지정 4년 만인 올해 학생이 140명으로 늘었고 입학·전학 문의도 줄을 잇고 있다. 어린이집과 대곡초에서 8~10년 함께 보낸 어린이 6명은 몇 달 뒤 졸업하면 일반 중학교, 대안학교 등으로 흩어지게 된다. 학부모 하태진(46)씨는 “문화적 충격을 받을까 염려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웃과 자연과 함께하며 자기 세계를 여물게 해왔고 심성도 곧은 아이들이라 잘 적응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나무햇살 조합은 빌려 쓰던 어린이집 건물을 올해 초 출자금에 대출금을 더해 매입했다. 20명 규모 시설을 39명까지 받아들일 수 있게 확장할 계획이다. 김유창 조합 이사장은 “어린이집 인원이 늘어 수익이 발생하면 장애아나 다문화가족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회환원에도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내리보다 앞서 공동육아에 나서 마을공동체의 뿌리를 내리려 힘써온 이들이 고양시에 있다.

덕양구 행신동 10여가구 주민들은 1997년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1~3학년 아이들을 위한 ‘정다운 방과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지식을 늘리는 공부보다 다른 이들과 관계 맺는 법, 배려, 심성·인성 발달 등에 초점을 뒀다. 예술, 과학실험, 만들기, 생태 나들이, 책교실 프로그램을 요일별로 진행했다. 이후엔 초등 고학년생을 위한 방과후 모임도 꾸렸다. 주 1~2회 답사와 토론 등을 했다.

고학년 학생이 늘자 따로 학습공간이 필요했다. 사무실이나 음식점 등에서 독서 모임을 해온 부모들도 공간이 절실했다. 십시일반으로 다시 조합을 꾸려 2009년 상가 건물을 빌려다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을 차렸다. 여러 차례 협동조합을 세우고 운영해본 터라 이번엔 색다르게 정관을 만들었다. 공동육아의 가치와 목적을 살리되, 운영만 조합원이 하고 이용은 마을 사람들이 공유한다, 탈퇴하면 출자금을 반환하지 않으며 해산하게 되면 자산을 나누지 않고 사회에 기부한다, 조합원을 늘려 마을 도서관으로 운영한다 등을 정관에 담았다. 조합 회원 1400명은 대부분 동네 주민 가족들로 채워졌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놀고 공부하며, 이웃끼리 고민을 나누는 마을공동체의 중심 공간이 됐다고 한다. 주민들에게 인문학 교실, 작가와 만나는 특강, 역사답사, 박물관·미술관 나들이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이승희 느티나무도서관 관장은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들은 서로의 울타리 안에서 끼리끼리 지내는 경향을 보이기 십상이다. 울타리를 걷어내고 동네로 나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본다”고 힘줘 말했다.

고양/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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