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등록 : 2013.12.23 11:47 수정 : 2013.12.23 11:48

툴바메뉴

기사공유하기

보내기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만들기 등 ‘사회적 경제’ 운동이 붐을 이루고 있지만, 이런 운동들이 기존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문제를 가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사진은 2011년 서울시 후원으로 열린 사회적 기업 관련 행사. <한겨레> 자료사진

서영표 교수 ’진보평론’ 기고
시장 사회화 대신 완충지대 전락
기존체제 공고화에 기여 위험 경고
“더 큰 문제는 이걸 진보라고 믿는것
기업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최근 시민사회운동 쪽의 눈에 띄는 움직임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마을 만들기 운동이다. ‘진보진영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기존 진보 정당·운동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런 운동들이 그나마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위 ‘사회적 경제’ 운동은 진보진영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서영표 제주대 교수(사회학과)는 최근 발간된 <진보평론> 겨울호 ‘낡은 진보에 대한 고별사: 혁신을 위한 비판과 성찰’ 특집에 기고한 ‘인식되지 않은 조건, 의도하지 않은 결과: 노골적인 계급사회의 탈 계급 정치’라는 글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운동이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비판과 결합되지 않으면 기존 체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에 머무르게 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한국 시민운동 전체가 ‘의도하지 않은 보수성’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언제부턴가 사회적 기업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더니 협동조합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퉈 이들을 지원하는 법률과 조례를 제정했다”며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적 이윤논리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채, ‘공공성’의 이름으로 시장을 공격하기 보다는 ‘사회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공동체의 영역(실제로는 사적 영역)으로 후퇴하면서, 사회적 경제라는 자본주의의 완충지대를 만드는 운동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사회화’가 아닌 ‘보완’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서울시장이 앞장선 마을 만들기와 사회적 경제 사업의 추진은 풀뿌리 사회운동의 외연을 넓히고, 뿌리를 깊게 하기보다는 풀뿌리 운동 안으로 경쟁의 논리를 이식할 수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이러한 노선을 진보의 새로운 전략이라고 믿고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시장의 사회화’를 위해서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활성화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이와 함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다양한 차원에서 생산과 분배의 계획에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고, 개별 도시에서도 기업의 운영과 도시계획에 이해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자원, 정보, 지식을 급진적으로 재분배하는 ‘국가의 민주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경제 운동에 대한 비판은 한국 시민운동 전체에 대한 비판과 이어져 있다. 서 교수는 “한국의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이 가져야 할 주체 형성 전략을 가지지 못하면서, 엘리트집단의 싱크탱크나 (지역의 경우) 준정당적 조직의 성격을 띠게 됐다”며 “정치력은 결여돼 있고, 좌파정당이나 노동운동과는 거리를 두려고 하면서 결국 기존의 보수적 정당을 통해 정책 형성 과정에 개입하는 정치활동으로 기울어졌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이 이념적으로 바라는 것은 탈자본주의적, 탈산업사회, 더욱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등이지만, 이들의 정치 전략은 자본주의와 성장주의를 지탱하는 기존 권력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엘리트주의, 제도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민운동이 파트너로 선택한 대상은 민주당이거나, 성공한 자본가일 뿐인 안철수였다”고 말했다. 최근의 ‘반정부 운동’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서 교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금융자본주의의 모순과 갈등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지배블록의 공동 작품이고, 민주당과 자유주의자들인 척하는 시장주의자들은 문제의 근원을 제공한 집단일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부분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이에 대한 저항이 모두 진보적이라는 착시현상을 발생시키고, 이제 운동의 목표는 ‘정상적’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되어버린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런 문제점들의 역사적 기원을 1980년대 ‘사회주의적 좌파’였다가 1990년대 초 ‘전향’한 세력이 시민운동의 주도세력이 된 사실에서 찾고 있다. 그는 “깊이가 얕았던 한국 좌파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는 현실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충격을 견뎌내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이런 얄팍함을 공유하고 있던 ‘전향자’들 또한 과거 운동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며 “이들은 지금까지의 운동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계급정치와 사회주의적 정치를 낡은 것으로 적대시하고, 시장과 국가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난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를 표방하는 시민운동 조직들이 제시하는 이념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 모순에 대한 구조적 인식과 비판을 전제해야 하고, 계급정치로 모든 사회적 갈등이 환원될 수는 없다는 것을 주장하되, 계급정치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그러할 때에만 현실정치에서 정당들과의 유연한 정책적 협조도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특집에는 서 교수의 글과 함께 노동운동, 통일운동 등 다른 부문 운동과 소위 ‘엔엘’(NL)과 ‘피디’(PD)라는 진보진영 ‘정파’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글도 함께 실렸다. <진보평론> 쪽은 “최근 한국의 진보운동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며 “이번 특집에서 한국 진보운동의 낡은 패러다임과 운동양식에 대한 발본적인 비판을 수행하고 이런 ‘내재적 비판’ ‘자기비판’을 통해 한국의 진보운동과 진보정치를 혁신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기사댓글

사회적경제소개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