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등록 : 2013.07.03 14:34 수정 : 2013.07.03 14:35

툴바메뉴

기사공유하기

보내기

* 공유경제가 뜬다 - ⑤ 옷·공구·장비
자녀가 커서 입지 못하게 된 옷을 버리지 않고 다른 이들이 쓸 수 있도록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어린이옷 공유기업 ‘키플’에서 직원들이 어린이옷들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온라인 물물공유 기업 통해 안 입는 아이옷 교환 활성화
자기 책 위탁한 만큼 대출도…정장·공구·악기 등 다양화 추세
소액 대여료 받아 수익 내기도 “커뮤니티 활성화해 신뢰 구축을”

창고나 옷장, 책장, 방구석에 쌓아뒀던 물건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조용히 번지고 있다. 독점과 과소비 대신 협력적 소비로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키우자는 공유기업, 공유단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바탕으로 둥지를 틀고 있다. 공유하자는 물품은 다채롭다. 어린이옷, 정장, 책뿐만이 아니다. 그릴, 기타 등 악기, 휴대용 데이터 수신 장치인 엘티이(LTE) 에그도 함께 쓴다.

· ‘잠자던 물건’ 함께 쓰니 기쁨 두 배 = “내 아이가 입던 옷이 버려지지 않고 다른 아이들이 잘 입는 걸 보면 마음이 푸근해져요.” 다섯살 외동아들 지후를 키우는 최은희(37·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씨는 요즘 아이옷을 공유하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몸이 커져서 못 입히게 됐지만 줄 데도 마땅찮고 버리기도 아까웠어요. 그런 옷을 보내주고 다른 옷으로 바꿔 올 수 있으니까요.” 1년6개월 전 아이옷 공유기업인 ‘키플’을 만나고부터다. 최씨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6~7벌씩 보내고 지후가 입을 티셔츠, 바지, 수영복, 한복, 가방, 신발 등을 산다. “옷이 깨끗하고 상태도 좋더라고요. 돈도 아끼고 폐기물도 줄이고 자원도 활용하니 일석삼조가 아닐까요.” 최씨의 말에서 웃음이 묻어났다.

영화배우 여민정(28)씨는 짬이 나면 ‘국민도서관 책꽂이’에서 책을 빌린다. 각자 가진 책을 제3의 공간에 모아두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오는 공유시스템을 갖춘 온라인 도서관 서비스다. “공공 도서관도 이용해요. 근데 새 책은 누군가 금세 빌려가고, 빌린 책이 많으면 무겁죠. 반납 기일도 짧은 편이고요.” 국민도서관 책꽂이는 보고 싶은 책을 택배로 받아서 두 달까지 읽을 수 있고 신간도 꽤 많다고 했다. 여씨는 이곳에 60권가량을 맡겨뒀다.

5월 초 대학생 신희재(23)씨는 기타를 6주 동안 빌렸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공유기업 ‘빌리지’를 발견했고, 빌려줄 사람을 만나 1만4000원을 줬다. “기타를 연주하고 싶었는데 기타가 내게 맞는지 몰라 오랫동안 망설였어요. 종로 낙원상가에서 중고 연습용 기타를 빌려도 5만원 이상은 줘야 한다고 들었는데 싸게 빌린 셈이죠.” 신씨는 “빌려줄 사람의 연락처 등이 페이스북에 공개돼 있어 믿음이 갔다”고 했다.

‘열린 옷장’은 정장을 값싸게 빌릴 수 있는 곳으로 젊은이들 사이엔 벌써 꽤 알려졌다. 기증받은 정장을 필요한 사람에게 대여하는 공유단체다. 하루에 10~20명씩 찾는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해 입어본 뒤 빌릴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 결제하고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 4박5일 빌리는 데 2만원이다. 정장을 빌리는 수요는 면접하러 갈 때(55%), 졸업앨범 등을 찍을 때(20%), 결혼식에 참석할 때(15%), 장례식장에 갈 때(5%), 프레젠테이션 등을 할 때(5%) 차례였다. 한만일(32) 대표는 “갑작스럽게 잡힌 면접 일정에 정장이 없어 허둥댔는데, 다행히 안성맞춤인 옷을 빌릴 수 있게 됐다는 메시지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자주 쓰지 않는 공구를 빌려주는 서울 도봉구 창3동 주민센터의 ‘나눔공방’. 창3동 주민센터 제공
· 공유하면 가치도 커져 = 물품을 공유하는 기업은 라인 플랫폼을 운영하므로 전국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옷 공유기업인 키플의 거래 방식은 간단하다. 누리집에서 ‘옷 보내기’를 누르면 택배 착불요금으로 옷을 가져간다. 꼼꼼하게 검수해 등급을 매기면 ‘키플머니’로 적립된다. 키플머니와 현금을 50%씩 들여, 누리집에 올라온 다른 옷을 살 수 있다. 지난해 초 출범한 키플의 현재 회원은 4200명이고, 보유한 옷은 2만3000여벌에 이른다. 이성형(42) 대표는 “하루 150~200개 물품이 등록되고, 이 가운데 70~80%는 당일에 새로운 이용자를 만난다”고 말했다. 옷장 속에 묻혀 있을 아이옷들이 날개 돋친 듯 교환되는 셈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중산동에 있는 ‘국민도서관 책꽂이’는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이 4000명을 웃돌고, 보유한 책은 2만권을 넘는다. 책이 늘면서 최근 두 배쯤 넓은 132㎡ 규모 공간으로 옮겼다. 하루 7~10명이 80~100권을 빌려간다. 품절되거나 절판돼 살 수 없는 책도 빌릴 수 있다. 전방부대 장병들도 한 달 40~50권씩 빌려간다고 한다. 이곳의 특징은 위탁 보관이다. 책은 많은데 보관할 공간은 없고 헐값에 팔기는 아까운 책을 보내면 그만큼 ‘믹스넛’이 쌓이고 다른 책을 빌려볼 수 있다. 왕복 택배비만 내면 두 달 동안 빌려볼 수 있다. 맡긴 책은 언제라도 되찾아갈 수 있다. 국민도서관의 책 반납률은 100%다. 도서관장인 장웅(41) 대표는 “신뢰의 키가 서로 맞물려가는 단계다. 국민도서관으로 가꿔가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자주 쓰지 않는 공구를 빌려주는 서울 도봉구 창3동 주민센터의 ‘나눔공방’. 창3동 주민센터 제공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 둥지를 튼 ‘빌리지’는 개인끼리 물품을 빌리고 빌려주는 공유 플랫폼이다. 지역별·주제별로 원하는 상품과 지역을 누르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 권혜진(29) 빌리지 대표는 “편리하고 안전하게 물건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지역별·주제별로 빌리지타운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공유기업으로 지정한 빌리(대표 최준현)도 개인간 물품 공유 플랫폼을 구축해 ‘사회적 대여’에 나서고 있다.

아이를 위해 값비싼 스토리빔을 샀던 회사원 김학용씨는 ‘공유’ 경험으로 짭짤한 재미까지 봤다고 했다. 빔프로젝터로 그림을 비추면서 책을 읽어주는 장치로 20만원 넘게 들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공유기업 ‘원더렌드’ 누리집을 통해 스토리빔을 10여차례 빌려주고 10만원쯤 수익을 거뒀다. “아이가 스토리빔에 흥미를 잃어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게 낫겠다 생각했지요.”

· 공유엔 신뢰의 관계망이 핵심 = 공공 영역에서도 ‘작은 공유’ 실험에 나서고 있다. 서울 자치구의 일부 주민센터에선 전기드릴 같은 공구 공유에 나섰다. 관악구 중앙동·신림동·낙성대동·행운동·신사동, 도봉구 창3동 등은 공구 대여 주민센터를 운영한다. 중앙동 공구 대여 센터를 운영하는 양동구씨는 “비싸지만 자주 쓰지는 않는 전기드릴 같은 공구를 빌리러 오는 주민들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 은평구의 ‘은평 이(e)품앗이’는 ‘지역화폐’를 통해 물품과 재능을 나누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회원 1630명이 2년여 동안 6000여건의 나눔을 통해 2691만여문을 결제했다고 한다. ‘문’은 이품앗이에서 쓰는 공동체 화폐 단위다. 은평 이품앗이 장형선(55) 운영위원장의 집 뒤쪽 공간은 이품앗이 물품공유소다. 대용량 청소기, 예초기, 노인 보행기, 사다리, 텐트, 목공 도구 등이 즐비하다. 필요한 회원들은 언제든지 빌려갈 수 있다. 그는 최근 은평구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물품공유센터’ 설립을 신청했다.

은평 이품앗이는 은평구 지원을 받아 한 달 4~5차례 품앗이 놀이학교, 만찬회 등을 주민센터 등에서 연다. 공유경제를 연구해온 양석원씨는 “공유경제가 발전하려면 커뮤니티와의 연계를 높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신뢰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유 실험들이 공동체를 일구는 실마리가 될까? “경제가 어려워진 때문인지 가족 단위로 품앗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형성돼야 다양한 협력과 소비가 일어납니다. 공유경제가 살아야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지역공동체도 활기를 찾을 겁니다.” 장형선 운영위원장은 확신하듯 말했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기획연재|공유경제가 뜬다
사회적경제소개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