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등록 : 2013.08.16 11:16 수정 : 2013.08.16 11:33

툴바메뉴

기사공유하기

보내기

나 혼자, 같이 사는 셰어하우스 구경하려면 클릭

[esc] 커버스토리 1인가구 모여사는 셰어하우스 바람

1인가구 450만 시대. 혼자 사는 사람은 늘어만 가는데 치솟는 전세가로 혼자 살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소유할 수 없어도 공유할 수는 있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사는 셰어하우스가 늘고 있다.

우리 꼭 모여서 함께 살자, 던 약속은 쉽게 취소됐다. 집값 탓이다. 친구들이 각자 청약통장을 들고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1인가구 450만 시대. 자기만의 집은 없어도 자기만의 삶을 지키려는 요즘 싱글들은 모여서 함께, 또 따로 산다. 싱글들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 현관문을 두드려봤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닉네임으로 썼다.

401호-402호

인천 서구 한 빌라 401호에는 6명이 산다. 남자 셋, 여자 셋. 엄밀히 말하면 부부 1쌍과 싱글 4명이 산다. 옆집 402호에도 신혼부부 1쌍과 비혼 남녀 4명이 산다. 쌍둥이 집처럼 꼭 닮은 두 집의 구조도 똑같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거실에 침실 3개. 왼쪽에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401호 거실에는 12명이 의자 놓고 모여 앉아도 넉넉한 큰 탁자가 있고 402호 거실에는 6명이 둘러앉기 좋은 낮은 탁자가 있다. 위아래층 합치면 155㎡가 넘는 널찍한 이 집의 침실 3곳은 남자 둘, 여자 둘, 신혼부부가 각기 나눠 쓰고, 위층 옥탑방엔 철 지난 옷가지들이나 안 쓰는 짐을 차곡차곡 정리해두었다.

월요일 밤이면 401호에서는 ‘밥상모임’이 열린다. 402호 사람들도 함께 요리하고 저녁을 나누어 먹는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앞다투어 이야기하고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갖는다. 밥상을 물리곤 가족회의도 연다. 대부분 30대 초·중반에 성도 다른 12명 대가족이다.

싱글과 커플이 함께 사는 ‘우동사’
여자 5명이 따로 방 쓰며
살림살이 같이 하는 은실이네집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월세처럼 이자를 갚아 나가고
같이 밥먹으며 ‘식구’가 됐다

시작은 401호였다. 2011년 서울 서초구에서 협동조합형 카페를 하는 조정훈씨를 포함해 불교 정토회에서 만난 6명의 친구가 “함께 살아보자”고 뜻을 모았다. 마을살이를 고민하자는 뜻에서 집 이름은 ‘우동사’(우리 동네 사람들)라고 지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자 옆집에도 우동사가 생겼다. 우동사는 근처에 곧 세번째 터전을 마련할 예정이다.

우동사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월세처럼 이자를 갚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한달 이자와 생활비를 합쳐 80만원 정도가 드는데 집집마다 6명이서 나눠 낸다. 싱글과 부부가 함께 사는 구조가 독특하지만 알고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단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소만씨와 적정기술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대한씨 부부는 402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혼을 하려면 집도 있어야 하고 수익도 안정되어야 하는 등 갖출 것이 많은데 함께 사는 구조에선 살림을 시작하기가 훨씬 수월했다”고 한다. 비싼 월세에 쫓겨 자산을 만들지 못하다 보니 다시 살 곳을 찾기 어려운 악순환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셰어하우스는 월세 피난처지만 꼭 경제적 이유만으로 함께 사는 것은 아니다. 몇해 전 전북 남원으로 혼자 귀촌했던 단디(31)씨는 외로워서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부산에서 올라와 한 물류협회 연구원으로 일하는 에바(32)씨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살기 시작했고 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을 배웠다”고 말한다.

셰어하우스마다 ‘싱글들의 친구’ 고양이가 있었다. 서울 은평구 ‘은실이네 집’에서 키우는 은실이. 남은주 기자

은평구 은실이네

서울 은평구의 한 2층짜리 단독주택에는 여자 5명이 모여 산다. 문패는 없지만 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름을 따라 동네 사람들은 이 집을 ‘은실이네 집’이라 부른다. 여성주의 동아리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2년 전부터 함께 사는 곳이다. 지역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칼리(39)씨는 이 집에 살면서 한결 부담을 덜었단다.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면 월급이 굉장히 적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데 여러명이 모여 살면 좋은 공간에서 훨씬 쾌적하게 살 수 있다. 그게 핵심이다.” 한 사람당 매달 임대료와 생활비로 30만원씩 내서 침실 5개에 식당은 따로 있고 마당엔 텃밭까지 갖춘 집에서 산다. 그런데 이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은실이네’라고 적힌 장부엔 살림살이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동네 생협에서 장본 것은 물론 각자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사고 공동 생활비에서 타서 쓴다. 매달 상조회비로 따로 1만원씩 걷어 함께 경조사를 대비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모인 돈을 지난해 제주 강정마을에 보내기도 했단다. 퍼머컬처(지속가능한 농업) 활동가인 소란(38)씨는 텃밭에서 푸성귀를 길러 곧잘 음식을 차려내고 숫자에 밝은 친구는 총무를 맡아 살림을 꾸린다.

“우리 식구들은 무엇을, 누구와 먹을 것인가에 관심이 많아요. 10년 동안 혼자 살면서 끼니를 대충 때웠던 저는 처음엔 적응이 안 됐죠. 그런데 식구 중 누구 하나라도 아프면 다른 식구가 그만큼 일을 못하게 된다는 말에 맞추려고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좋은 밥상을 함께 누리게 됐어요.” 현대문학 박사과정에 있는 솔벗(37)씨의 말이다. 철학박사 강신주씨는 문화방송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나와 “혼자서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인과 만나서 식사할 가능성이 높다. 혼자서 식사를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만나서 먹는 음식도 ‘사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 일이 있다. 은실이네 식구들은 싱글의 사료를 가족의 밥상으로 바꾼 셈이다.

30대 후반 여자 5명.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살아온 이들은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독립적이다. ‘여자들은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함께 방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우리 식구’라고 부른다. 당신이 함께 사는 그 사람이 가족이다. 솔벗씨는 “새로운 가족과 살면서 생각한 것은 칼릴 지브란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는 시였다. 한국 사회에선 부모님이 일방통행하는 식이라 원가족과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서로의 꿈을 인정하는 친구들끼리는 함께 있지만 건강한 거리를 둘 수 있었다”고 말한다.

셰어하우스는 ‘증축중’

우연일까. 우동사나 은실이네가 터잡은 것과 비슷한 시기에 서울 마포 마을공동체 성미산 마을에 있는 협동조합주택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은 1인생활자들을 위한 독립가구를 마련할 계획을 시작했다. 이 주택엔 5명의 독립생활자가 지난해 여름 입주했다. 서울시에서 도봉구에 마련하는 임대주택 ‘두레주택’은 올가을 집들이를 앞두고 있다. 거실·주방을 같이 쓰고 침실을 따로 하는 형태로 설계된 두레주택은 1~2인 가구를 위한 셰어하우스다.

싱글들의 모여 살기는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영국의 스프링힐, 독일의 반진주택 등 유럽에서는 2006년부터 1인가구 공동주거가 대안처럼 등장했다.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기노채 대표는 “일본에선 춤·요리 등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한 셰어하우스에 산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나눠 내는 우리의 셰어하우스는 주로 저금리라는 경제적 여건을 이용하되 운영 방식은 유럽의 공동체를 닮았다. 우동사에선 신혼부부는 전세금으로 목돈을 내고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며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낸단다. 우동사 식구들은 “청년들의 일자리는 대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든지 실직할 위험이 있다. 내가 어려울 땐 또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내는 상부상조 구조”라고 설명했다. 남는 생활비는 차곡차곡 모았다가 갑자기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긴 식구들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셰어하우스는 자칫 연고 없이 고립되기 쉬운 청년 싱글들의 사회적 안전망 노릇을 하는 셈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남과 살기, 불편하지 않을까? 셰어하우스에서 사는 사람들은 ‘함께 살기 전에 마음을 맞출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조언한다. 소만씨가 전하는 우동사의 경험은 이렇다. “남남끼리 모여 잘 살기 위해 정말 늘 꾸준히 노력했어요. 함께 진안, 홍성, 완주 등을 다니며 마을살이 워크숍에 참가했고 외부강사를 초대해 집단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집은 네트워크다. 공동체의 다른 말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김경호 기자, 우주하우스 제공
사회적경제소개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