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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16 11:31 수정 : 2013.08.1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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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독립생활자를 위한 주택 ‘특집’의 공용공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sc] 커버스토리 셰어하우스

독립생활자들의 개성있는 공동주거 형태 소행주·우주하우스·보더리스하우스

성미산마을 ‘소행주’
입주자들이 설계부터 참여
공통 관심사로 모인 ‘우주’
취미생활도 함께 즐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던 아파트 광고는 옳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그렇다. 혼자 밥이나 지어 먹는다는 뜻의 자취 생활 대신 혼자 살기를 위한 의식주를 고루 갖춘 1인 가정을 택하는 싱글이 늘고 있다. 혼자서 멋진 주거공간을 만들기는 어려워서 힘을 합쳤다. 협동조합주택 한켠에 독립생활자를 위한 주거공간을 마련한 소행주, 싱글들을 위한 리모델링 하우스 우주, 여러 국적의 싱글들이 함께 모여 사는 보더리스 하우스 등을 둘러봤다.

2 옛 한옥을 고쳐 만든 우주하우스 3호점. 우주하우스 제공

성미산마을 독립생활자를 위한 ‘특집’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현관에 문패 대신 ‘독립생활자를 위한 집, 특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집이 있다. 이 집엔 남실(닉네임·36)씨 등 5명이 산다 . “가장 특이한 점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싱글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거죠. 가구까지도 일일이 의견을 냈어요. 보통 결혼할 때 집 짓다가 신혼부부가 헤어진다는데 왜 그런지를 알겠더라고요.” 지방에서 올라온 남실씨는 그동안 유목민처럼 살았다고 했다. 20대 중반에서 40대까지 여자 5명, 쌍용차 시위현장에서 발견한 ‘부장님’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까지.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 2호에 살 독립생활자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을 해서 모인 가족들이 다 그랬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따로 살아온 5명의 삶을 한데 맞추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해법은 집을 짓는 7개월 동안 매일 만나는 것이었다.

“집을 지으면서부터 서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때 합의했던 원칙은 일주일에 한번은 함께 모여서 밥을 해 먹자는 것과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이야기해서 풀자는 거였어요.” 그들은 돌아오면 따뜻한 밥이 있는 진짜 집을 원했다. 주방엔 ‘마지막으로 밥 먹은 사람이 꼭 밥해놓기’라고 써붙이면서 끼니를 그저 때우지 말고 제대로 밥을 먹자고 약속했다. 동네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을 모아 밥을 나누는 자리도 만든다. 한달에 한번 ‘특집’의 베란다에서 열리는 ‘문란한 밥상’(달빛 아래 열리는 단란한 밥상) 모임에서 동네 청년들과 만난다.

이 집은 침실 4개와 욕실이 있는 아래층과 식당과 거실이 있는 위층으로 나뉜다. 위아래층 합쳐 56㎡ 면적의 가뜩이나 좁은 공간이지만 식당과 거실 같은 공용공간을 더 늘리고 각자 잠자는 방은 좁히기로 했다. 살림을 합쳐 놓고 보니 책이 많았다. 계단은 책장을 겸하고 공용공간 벽엔 선반을 키웠다. 서울살이 동안 수없이 이사를 다녔지만 합치고 보니 짐이 턱없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비상약품도 한데 모으고, 겹치는 책은 치우고, 1년에 한번 쓸까 말까 한 여행가방은 소행주 창고에 두고 돌아가면서 쓴다.

그들이 이 집에 내는 돈은 보증금 2000만원에 월 20만원. 이 집을 지을 때 받은 은행대출을 조금씩 갚아나가다 보면 월세는 8만원까지 내려가기로 되어 있단다. 생활비는 따로 모아 신용카드 한장으로 함께 쓴다. 쌀이 떨어질라치면 5명이 함께 조각보를 만들어 마을 장터에 팔기도 했다. 마을 생활협동조합에 혈연이 없어도 한가족으로 인정해달라고 청원도 했다. 이곳은 싱글을 위한 집일까, 아니면 가족이 사는 곳일까. “여기서 오래도록 가족 공동체를 이뤘으면 좋겠고 마을에 뿌리내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다.

3 우주하우스 공용공간. 우주하우스 제공

주제가 있어 모인 ‘우주 하우스’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옛 한옥에는 남자 넷, 여자 둘이 산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방들이 있고 너른 마당 저편으로 커다란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나지막한 책장 너머로 또 커다란 탁자가 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이 집 식구들은 대부분 밤에 이곳에 모여 함께 밥을 해 먹고 하루 동안의 이야기도 주고받는다. 기업 인턴, 신입사원, 프리랜서, 외국 유학생 등 ‘사회초년생’들이 모여 사는 이곳은 ‘우주 3호점’이다.

‘우주 하우스’는 소셜벤처기업 피제이티 옥(PJT OK)에서 만드는 셰어하우스다. 얼마 전 서울 홍익대학교 근처에 5호점을 낸 우주 하우스의 특징은 지역마다 주제를 갖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 처음 낸 권농동 우주 하우스 1호는 창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서촌 재개발 지역에 들어선 4호점은 ‘슬로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홍대 근처엔 창의적 활동에 주력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문을 연 우주 하우스는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다. 9월까진 전농동, 미아동, 녹번동에 3개 지점을 더 낼 예정으로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다. 6·7·8호 점의 주제는 각각 ‘여행·요리·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란다. “좋은 집만큼이나 좋은 사람들이 사는 것이 셰어하우스의 질을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에 입주자 선정에 고심합니다. 취미나 지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한데 엮지요.” 피제이티 옥의 창업멤버이기도 한 박형수 운영팀장의 말이다.

셰어하우스는 대부분 회사가 집주인에게 집을 빌려 다시 싱글들에게 재임대하는 형식이다. 우주 하우스도 비슷하다. 집을 빌려 고친 뒤에 입주자에게 받은 돈으로 임대료를 낸다. 지은 지 30년은 넘어 보이는 돈의동 한옥은 공용공간을 넓히고 마당을 단장해 102.81㎡의 ㄷ자 한옥의 숨통을 틔웠다. “가족이 표준화된 모양으로 산다면 뻔한 공간이겠지만 쓸모를 다르게 보면 숨어 있는 공간을 발견한다”는 게 우주 쪽의 설명이다.

돈의동 한옥 식구들은 공과금 포함해서 월세 55만원을 내고 이 집에 산다. 보증금으로 2개월치를 먼저 냈다. 보통 주변의 70~80% 정도의 월세를 받는단다. 박 팀장은 “주거비도 주거비지만 1인가구의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같이 지내고 이야기를 나누는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했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사람들은 쉽게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얼마 전 1, 3호점 식구들은 같이 사진 공모전에 나갔단다. 4, 5호점은 더운 여름밤 종종 치맥 파티를 벌인다.

마포 보더리스 하우스에 사는 일본인 사토미씨, 박미향 기자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사는 ‘보더리스 하우스’

몇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보더리스 하우스’라는 이름의 셰어하우스가 세를 불려나갔다. 이름 그대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방을 나눠 쓰는 공동주택이다. 올해 1월 한국에도 ‘보더리스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서울 마포역 근처에 있는 보더리스 하우스 9호점에서 이성일 대표를 만났다. 재일동포인 그는 “전통적으로 일본의 싱글들은 원룸에서 단독 주거를 선호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셰어하우스가 크게 늘었다. 고립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서울에서 보더리스 하우스는 좀 다른 의미다. “서울의 외국인들 거주상황을 조사해보니, 고시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숙집은 거의 없어졌고 기숙사는 자리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넓다고 판단했다.” 보더리스 하우스를 찾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1년 미만의 단기 거주자들이란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언어를 익히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보더리스 하우스 입주 조건은 20~35살의 싱글이다. 지점마다 유럽이나 영국·미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1~2명씩은 있고 아시아인도 절반 정도 된다. 나머지는 한국 사람들이다.

마포 보더리스 하우스에 사는 일본인 사토미(사진)씨는 주말이면 같이 사는 한국인 ‘하우스 메이트’들과 놀러 나간다. 서로 한국말과 일본말을 가르쳐주며 빠르게 친해졌다. 동국대 사회학과에 교환학생으로 온 그는 안전과 편리 문제 등을 고려해 기숙사를 얻을 때까진 보더리스 하우스에서 지낼 예정이다. 남자 둘, 여자 둘, 월세가 비싼 편인 마포 지점의 경우 1인실이 60만원, 2인실은 40만~50만원 정도로 임대료가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새로 지은 오피스텔에 교통이 편리하고 관리가 잘되는 ‘고급형 셰어하우스’를 내세운다.

일본에서 셰어하우스 시장 1위를 점유하고 있는 보더리스 하우스는 얼마 전 50호점을 열었다. 한국에서는 곧 홍대 앞에 10호점을 열 예정이다. 어디서든 셰어하우스가 늘어나는 속도가 숨가쁘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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