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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3 14:47 수정 : 2013.07.0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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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유경제가 뜬다 - ③빈 공간
젊은 작가들의 대안 전시공간인 부산 기장군 ‘오픈 스페이스 배’에서 머무는 작가들. 부산/김광수 기자


안 쓰는 공간 필요한 사람에 내주는 ‘공간 공유’ 사회적 현상으로 번져
소유자는 공간 활용해 가외소득…필요한 이들에겐 소중한 보금자리

사무실·주차창 등을 쓰지 않을 땐 남에게 함께 쓰자며 값싸게 빌려주거나 거저 내주는 곳이 늘고 있다. 업무 공간을 찾는 젊은 사업자나 갑자기 행사를 열려는 젊은이들은 반긴다. 경제적 수익을 늘릴 뿐 아니라 개인 소유의 공간을 공동 이용함으로써 사회적 자원으로 한껏 활용한다는 의미가 크다.

· 빈 사무실, 함께 써요 = 올해 초 한세대 공간환경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이현준(26)씨는 졸업생 대표를 맡아 지난해 10월 졸업전시회를 마무리하는 파티를 준비했다. ‘홈커밍데이’도 겸해 졸업한 선배들까지 150명이 모이는 자리였다. 해마다 100만원 넘게 주고 갤러리 등을 빌렸는데, 지난해 파티는 달랐다. 서울 강남의 예식장에서 비어 있는 평일 저녁 예식장을 공짜로 내준 덕이다. “의자를 치우고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했어요. 예식장에서 차려준 뷔페 음식값만 들였지요.”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는 최근 여섯 차례 사회적기업가 교육을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아모레퍼시픽 광명지점에서 진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주로 낮에 쓰는 2층 뷰티라운지를 저녁에 무료로 쓰도록 내준 것이다. 헌옷·폐목재 등을 되살리는 사회적기업을 구상하며 교육에 참가한 김미경(31)씨는 “이런 공간이 안정적으로 제공된다면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업무용 공간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남들과 함께 이용하자는 ‘공간 공유’ 현상이 차츰 번지고 있다. 사회적기업 페어스페이스(fairspace.co.kr)는 이런 공간의 중개에 나섰다. 특정 시간에만 쓰고 비워두는 공간을 기부받고 이를 다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결하는 것이다.

건축설계를 전공한 구민근(35) 페어스페이스 대표는 작은 건축설계 사무실을 차리려고 장소를 물색하다가 지난해 초부터 빈 공간을 기부받는 캠페인을 벌였다. 지난해 5월 서울 홍익대 근처 카페 주인이 첫 공간 기부자였다. 손님이 뜸한 시간대에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도 공부방이나 회의실로 쓸 수 있게 했더니 사람들이 몰렸다. 도서관 자리를 찾던 학생, 약속 시간까지 머물 곳이 필요한 이들이 찾았다. 구 대표는 “공짜로 이용하는 이들도 서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음료를 주문하게 되고, 카페 쪽도 홍보 효과가 있다며 반겼다”고 전했다.

이렇게 공간 기부는 수익으로도 이어진다. 한세대 졸업생 이현준씨가 이용했던 강남의 예식장은 이젠 이용료를 받는다. 모임이나 단체가 행사를 열려고 몰려든 때문이다. 공간 소유자는 어차피 놀릴 공간을 활용해 돈을 벌 수 있고 공간이 필요한 사람은 값싸게 이용할 수 있어 서로가 이익이다.

페어스페이스는 ‘스페이스메이트’라는 공간 공동 이용도 맺어주려 한다. 사무실을 구했지만 지나치게 넓어 임대료가 부담인 이들과, 작은 책상 정도가 필요한 청년 벤처기업가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자취방 월세 부담을 줄이려 룸메이트를 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시가 지난 4월 공유기업으로 지정한 ‘프라미스’는 서울·경기지역 교회 20여곳의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사업을 한다. 예배당을 회의실 또는 소극장으로 쓰거나, 일반인도 교회에서 예식을 치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건물 지하 ‘물레책방’은 2010년 4월 책과 공간을 공유하겠다며 문을 열었다. 벽면 서가 1만5000여권 장서 가운데 구하기 힘든 책 3000여권은 ‘팔지 않고’ 공유한다. 99㎡ 면적 한쪽엔 무대가 있고 책상·의자 등을 놔뒀다. 3시간 기준 이용료는 10만원인데, 공익적 행사나 스터디를 하려는 학생들에겐 깎아주거나 무료로 내준다.

페어스페이스 구 대표는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이 1년 200일 넘게 비어 있는 점을 짚었다. 땅값만 약 16조원인 시설이 지난해 대관된 날은 148일뿐이었다. 그는 “공간은 소유하면 비싸지고 공유하면 풍성해진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 상상만 하던 일도 막상 해보면 의외로 쉽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손님 뜸한 시간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카페. 페어스페이스 제공


· 서원도, 빈집도 공유할 만 = 대구 중구 동산동 ‘구암서원’(龜巖書院)은 지난해 8월 한적한 문중 시설에서 학생·시민들이 북적대는 공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924년 세워진 이 서원은 달성 서씨 문중 소유인데, 잘 관리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다. ㈔대구문화유산은 서원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문중 쪽도 흔쾌히 승낙했고, 대구문화유산은 1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해 한옥스테이와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재단장했다. 자부담 2000만원에다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원받은 5000만원, 지방비 3000만원을 보탰다.

1983㎡ 터 한옥 4개동 가운데 3개동에 객실 5개를 꾸몄다. 널찍한 마당에선 널뛰기·윷놀이·투호 등 전통놀이도 체험할 수 있다. 허동정 대구문화유산 대표는 “사유 건물이었지만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으로 거듭나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숙박객은 620여명, 방문객은 1만명을 넘었다.

부산 기장군 일광면 산기슭에 있는 ‘오픈스페이스 배’(spacebae.com)는 국내외 젊은 예술인들이 깃들인 공간이다. 2006년 8월 서상호(45)씨 등 부산지역 미술인들이 대안 전시공간을 내걸며 만들었다. 서씨의 친구가 농장·산 등 13만여㎡를 거저 내줬다. 작가들이 머물며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숙박시설과 전시장을 무료로 제공하는 비영리 플랫폼이다. 자치단체나 문화재단 등의 공모 사업에 지원해 받은 돈으로 8년째 신인 작가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부산 낡은 도심에 방치돼 있던 개인 소유의 빈집들은 세미나실이나 쉼터, 커피숍, 공부방처럼 주민들이 원하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사하구 감천2동 목욕탕은 8억원이 투입돼 도자기공방, 갤러리, 방문객 쉼터 등을 갖춘 감천문화마을 커뮤니티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부산시의 이른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이다. 부산시 창조도시기획과 권원중 담당은 “관 주도가 아니라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주민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빈집을 꾸민다”고 말했다.

한옥스테이 시설로 탈바꿈한 대구 중구 구암서원. 대구문화유산 제공


지난해 공유도시를 선언한 서울시는 공공시설의 유휴공간 736곳을 개방해 시민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올 3월부터는 시내 건물 앞 공개공지 100곳의 위치를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 가운데 5곳에선 건물주 동의를 받아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열린예술극장’을 운영하는 중이다. 쉬어갈 의자를 늘리고 벼룩시장을 여는 등 공개공지의 공유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사무소는 주민들이 부피가 큰 물품을 맡길 수 있도록 주민센터 유휴공간에 ‘공유창고’를 차렸다.

서울 성북구가 운영하는 성북문화재단은 저녁때는 한가해지는 3층 주차장 공간을 전시 등에 쓸 수 있게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서울시는 밤에는 텅 비는 공영주차장을 값싸게 임대한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한 달 이용하는 데 2만~5만원가량 한다.

서울시는 낮 시간엔 비게 되는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12만4150면을 공유하자고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낮엔 30%가량이 빈다. 주차장 한 면을 새로 조성하는 평균 비용은 5000만원이다. 5%만 활용해도 예산 233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기용 기자, 대구 부산/김일우 김광수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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